연극&뮤지컬

241104 안나, 차이코프스키 실황 녹화 중계 - 네이버 후원라이브

김루샤 2024. 11. 5. 01:41

뮤지컬 안나, 차이코프스키 2024년 11월 4일 월요일 오후 8시 녹화 중계 캐스트. 차이코프스키 역 에녹, 안나 역 김소향, 세자르 역 테이, 알료샤 역 김리현, 오네긴 역 송상훈, 타치아나 역 조은진, 클라라 역 손지원, 프리츠 역 홍기범

 

'테이'라는 사람의 목소리를 살펴보면 거친 질감 속에 맑고 청아한 알맹이가 분명 존재한다고 나는 느끼거든. 세자르의 목소리는 그 알맹이가 잘 드러나는 목소리였던 것 같아. 힘 있고 또렷한... 마치 하늘 같은 목소리랄까. 그래서 예술가들을 향해 외치는 그의 말을 들으면 호소력이 느껴지더라고. 첫 넘버부터 그게 확 드러났고, '예술가여'에서 정점을 찍었음. 개인적으로 라디오에서 부른 '예술가여' 라이브가 너무 좋아서 여러 번 돌려 들었는데, 극중에서 풀버전으로 부르는 거 들으니까 더 좋더라. 전체 넘버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넘버를 꼽으라면 이 넘버를 택하겠다. 이거 모닝콜로도 괜찮은 듯. "새!!!!! 시대의" 하면 바로 깬다(ㅋ)

 

한편, 정말 여러 가지 이야기가 얽힌 무대에서 흔들리지 않고, 인물의 목표, 인물이 원하는 걸 집요하게 표현하는 게 참 좋았다. 테자르는 정말로 자신의 생각이 최선이라고 믿고 있었어. 처음부터 억압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, 이게 정말 최선인데 설득이 안되니까 자기가 최선이란 걸 보여주려고 비밀 재판 얘기로 협박(...)까지 한 거지. 억압이 주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이 지워지지 않도록 해준 거야. 거기다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잖아.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자신의 음악보다 훨씬 강력하단 걸. 그래서 생긴 열등감 때문에 자신의 음악을 계속 외면했지만, 그 열등감이 모든 걸 파괴하게 두진 않았어. 그런 점에서 "저에게 시간을 주십시오."라고 말하는 부분이 참 좋았다. 목적이 어쨌든, 최소한의 이성이 남아 있는 사람이구나. (여담이지만 비흡연자 본체가 담배 파이프 들고 있는 거 참 묘하더라;;)

 

결국 차이코프스키로부터 거절당하자, 자신이라도 전장에 나서는 세자르. 사실은 누구보다 음악의 힘을 과신한 그가 전장에서 비로소 제대로 된 현실을 보게 된 것이다. 차이코프스키에게 계속 "현실을 봐."라고 했지만, 세자르도 현실의 겉만 보고 있었던 거지. 오히려 세자르가 이상주의자였을 거라고 나는 생각해. 비장하게 지휘하던 중 자신이 최선이라 여겼던 것이 무너지려고 하니까 어떻게든 다급하게 사람들을 붙잡고, 그럼에도 무너져버린 상황에서 혼자 노래를 이어가다가 결국 자신의 노래도 흩어져 버리는 거...... 하...... 김호경 씨 이런 연기 왤케 잘하지........ 천석이, 최대치, 세자르까지......... 이 뒤에 다시 일어서든 아니든 무너지는 순간을 너무 잘 표현해.......

 

그리고 대망의 '상처 입은 독수리'........... 아니 일단 처음에 셔츠 단추 두 개 열고 흐트러진 모습으로 나온 게 너무 고자극이라 순간 입틀막했구요((())) 넘버 이 전에 차이코프스키로부터 편지를 받잖아. 편지 읽다가 자신의 음악 언급되니까 눈빛 달라지는 거 진짜 미친 거 아니묘???????? 난 '테이'라는 배우가 이럴 때 진짜 너무 좋아. 어디에 반응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표현하는 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러니까 결국 테자르가 진짜 바란 건 자기 음악의 힘에 확신을 가지는 거였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편지 다 읽고 자조적으로 웃다가 '상처 입은 독수리' 시작하는데....... 그 순간 정말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는 게 너무 좋았어..... 팔의 움직임과 걸음, 풍부한 표현의 노래로 배우가 이 넘버 자체를 형상화하고 있더라니까. '상처 입은 독수리'라는 제목의 그림을 그리는 것과도 같았다고 봐...... 여기서 '자기 자신에게 집중'한다는 게 본인 연기만 밀어붙인다는 의미가 아니라, 그 순간 본인에게서 우러나오는 감정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표현하려는 게 느껴졌단 거..... 다들 뭔 얘긴지 아실 거라 믿으며......

 

아마 그는 음악이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때를 다시 생각해보지 않았을까. 그리고 자신의 음악이 어떨 때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도 돌아보지 않았을까. 세자르는 자신의 마지막 솔로 넘버가 끝난 이후엔 더 나오지 않아서 그의 결말을 관객이 추측해야 하지. 부디 그가 공허하지 않은 이상을 세울 수 있었길 바란다.... 그리고 테이 배우가 앞으로도 좋은 배우로 남길 간절히 바란다....... 내가 이런 후기를 계속 쓰고, 배우에게서 고마움을 느낄 수 있게, 지금처럼...........